한줄 詩

하류(下流)에서 - 김해동

마루안 2021. 11. 9. 22:40

 

 

하류(下流)에서 - 김해동

 

 

이부자락을 확 밀치자

새벽 으스름이 달려 나왔다

산의 어깨를 무등 타고

먹빛으로 덮이는 낮은 풍경들

텐트 속에서도 사랑은 집을 짓는다

거칠게 서 있는 도로 표지판 옆에

가을국화는 기꺼이 고개 숙이고

선회하는 물살 따라 모여드는

여름의 잔해들

보고도 못 본 척

집채만한 바위를 받치고 있는

주먹 돌 하나

그렇게 어디를 꼭 받쳐 들고

매년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우리들 삶이 처절하게 되지는 않기를

간절하게 파인 계곡 속으로 맴도는

너무 일찍 떨어진 나뭇잎 하나

 

 

*시집/ 칼을 갈아 주는 남자/ 순수문학

 

 

 

 

 

 

낙엽 - 김해동

 

 

숯불처럼 꺼져 가는 밤

거나하게 타오르던 열정

불꽃 속에 던져 버리고

이슬에 취한 몸 바람에 싣고

메마른 길을 나서야 한다

지난 세월의 그리움만 안고 가기에는

너무 그리워

빛 바랜 사연들도 함께

처음 가는 길을 간다

삶이란

시간이란 열차를 타고

이미지에 맞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

바람이 먼저 가을 강을 건너간 뒤

이제 서로의 안부는 묻지 않기로 했다

실핏줄처럼 엉킨 붉은 잎맥을 따라

흐린 별빛이 내려앉고

늑골같이 휘어진 그늘을 지우자

둥근 보름달이 떠 올랐다

노오란 은행잎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