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문진, 내 어깨에 껌이 - 이자규

마루안 2021. 11. 5. 22:42

 

 

사문진, 내 어깨에 껌이 - 이자규

 

 

붉은 술 아껴 넘길 때마다 비릿한 서쪽이 부풀어갔다

 

바람자락이 억새들을 방죽으로 쓸어 뉘었을 때 연지 찍은 황혼이 취한 노을을 안았다

 

멀리 맨몸의 두물머리에서 낙동과 금호가 몸을 합쳤는데

 

물새 발자국 형상의 수면 위로 저 산과 이 강의 무궁함이 자연의 차오르고 기울어짐의 노래라서

 

바람 재운 물속 용이 춤을 추면 견우성과 남두성이 손짓해 선상은 이미 신선인 양 차오르는 달이라서 우리는 계수나무 노와 모란 상앗대를 잡았다

 

기타 퉁기는 키다리 묵객은 적벽가를 읊어대는데 우리 삶이 그저 슬퍼하는 듯 호소하는 듯 백로가 강을 건너가는 일

 

피어오르는 꽃으로만 그득한 배가 단물을 씹고 있다

일몰 읽은 취기는 강기슭 휘어지는 억새들 때문 누군가 당분 빠진 하현달을 내 어깨에 던졌다

 

배 후미의 푸르디푸른 숨소리 벼랑을 손바닥에 적었다

 

 

*시집/ 아득한 바다, 한때/ 학이사

 

 

 

 

 

 

낙엽 - 이자규


아름다운 최후를 위해 살았다 
푸른 의지로 열렬히 나부꼈다 
단풍으로 뜨거웠던 노후가 생의 절정이라서
흙에 들어야할 노래가 흙의 색깔로 천천히 
바람이 분다
나무의 사지가 비틀릴수록 그의 내생은 깊어서 
가느다란 잎맥이 마지막 입맞춤을 불렀다
가끔 폭설과 함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도 새겨졌다

미명을 사르던 가지 끝 
지난 해 보낸 제 분신들을 알고 있는
인지의 나무

땅에 닿는 순간까지 푸르렀던 의미
모든 것은 기억의 뼈대로 키가 큰다
낙엽의 주검은 
불굴의 그늘이 될 귀환이므로
겨울새 하나 둘 가지에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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