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일일 연속극 - 김해동

마루안 2021. 9. 9. 19:47

 

 

일일 연속극 - 김해동

 

 

일일 연속극을 보면서 견딘다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비디오테잎으로 장식장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분량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함께 울고 웃었다

때로는 기가 차서 억울해 하면서

"저것 다 연기야"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허위로 가득 찬 세상

재생하여 반복되어도

눈 뜨면 사라지는 안개 속이다

 

일일 연속극을 기다리면서

드라마 같은 또 하루를 견딘다

 

종방 어디쯤

덧니처럼 튀어나온 버들강아지

가늘고 긴 물관이 터져

내 봄도 언제쯤 활짝 피어나겠지

 

 

*시집/ 칼을 갈아 주는 남자/ 순수문학

 

 

 

 

 

 

패티 김 - 김해동

 

 

칠십오 세에 하이힐 신고 블루진 입고

포즈를 취한 디바

 

해는 뜰 때보다 질 때가 더 아름답다고

황혼을 불러 노래한다

 

봄날부터 꽃 안개로 물들이며

연인들이 가야 할 길을

빛과 그림자로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해 달라고

저녁놀과 함께 섰다

 

지는 해의 마지막 노래는

밤하늘에 붉게 타오르고

가슴 속엔 회환(回還)만이

샛별처럼 떠 오른다

 

'이젠 돌아가 초콜릿 실컷 먹고 싶다'

 

 

 

 

# 김해동 시인은 경남 진해 출생으로 홍익대 대학원 미술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순수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시를 연재했다. 시집으로 <비새>, <칼을 갈아 주는 남자>가 있다.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다수의 개인전을 연 바 있는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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