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실면증 - 손병걸

마루안 2021. 9. 10. 22:23

 

 

실면증 - 손병걸

 

 

견디다 못해 늦은 밤

손전화기를 든다

숫자를 누른다

 

접속에 실패하는 깊은 밤마다

오히려 당신 쪽으로 나는

함께 걷던 적확한 주파수를 맞춘다

 

칠흑의 새벽이 여명에 이를 즈음

나는 고칠 수 없는 습관을 절망하며

창 너머 하늘 깊숙이 응시한

붉어진 눈길을 문 쪽으로 겨눈다

 

또다시 방문을 활짝 열고

허겁지겁 신발 끈을 묶듯

억제할 수 없는 발끝이

손끝처럼 불안불안 당신을 찾아 나선다

 

의연한 표정 속에 통증을 잘 감추고

정말 괜찮은 안녕이었다는 말

기꺼이 웃으며 돌아섰다는 말

그 말들은 다 거짓말

 

흘러간다는 시간이 되레 싸여 있듯

이별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몸의 거리일 뿐

그리움은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충분히 읊어도 잠을 잃어도 더 많이 아파해도

괜찮다 죽음조차 헤어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을 멀리 떠나보내고 알았다

 

 

*시집/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 걷는사람

 

 

 

 

 

 

코스모스 - 손병걸

 

 

우리는 위태로운 모습으로 피어났다

그러므로 함께 걷기로 했다

손을 잡고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만개한 꽃잎처럼 머리칼이 나부꼈다

 

가늘고 긴 꽃대 위 꽃봉오리들

한 시절 폭죽처럼 찬란했으므로

걸어온 그 많은 발소리 따라

캄캄한 혼돈이 사라졌다

 

꽃이 피고 지고 피고 지듯

여러 해를 튼튼히 걸어낸 계절마다

귓볼에는 화사한 바람이 불었고

발소리의 질서는 굳건했다

 

그러나 길이 없는 산기슭에서

이제는 홀로 길을 찾아야 할 때

각기 더 가파른 길을 쉼 없이 오르듯

스스로 환한 꽃송이가 되어야 할 때

 

예감 한번 없이 그래서 아프게

후두두 꽃잎 지고 만 흐린 날들이어서

걸어가야 할 길이 아득하겠지만

모든 꽃은 뿌리가 관장한 무수한 물길이

생생한 꽃잎을 펼쳐 왔으니

 

가자, 떨군 꽃잎들 뿌리를 덮어 주며

산골짝을 흘러내려 간 구름을 찾아

가자, 아직도 남은 삶을 철저히 사랑하기에

지극할 수밖에 없는 달콤한 고독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