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면증 - 손병걸
견디다 못해 늦은 밤
손전화기를 든다
숫자를 누른다
접속에 실패하는 깊은 밤마다
오히려 당신 쪽으로 나는
함께 걷던 적확한 주파수를 맞춘다
칠흑의 새벽이 여명에 이를 즈음
나는 고칠 수 없는 습관을 절망하며
창 너머 하늘 깊숙이 응시한
붉어진 눈길을 문 쪽으로 겨눈다
또다시 방문을 활짝 열고
허겁지겁 신발 끈을 묶듯
억제할 수 없는 발끝이
손끝처럼 불안불안 당신을 찾아 나선다
의연한 표정 속에 통증을 잘 감추고
정말 괜찮은 안녕이었다는 말
기꺼이 웃으며 돌아섰다는 말
그 말들은 다 거짓말
흘러간다는 시간이 되레 싸여 있듯
이별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몸의 거리일 뿐
그리움은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충분히 읊어도 잠을 잃어도 더 많이 아파해도
괜찮다 죽음조차 헤어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을 멀리 떠나보내고 알았다
*시집/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 걷는사람
코스모스 - 손병걸
우리는 위태로운 모습으로 피어났다
그러므로 함께 걷기로 했다
손을 잡고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만개한 꽃잎처럼 머리칼이 나부꼈다
가늘고 긴 꽃대 위 꽃봉오리들
한 시절 폭죽처럼 찬란했으므로
걸어온 그 많은 발소리 따라
캄캄한 혼돈이 사라졌다
꽃이 피고 지고 피고 지듯
여러 해를 튼튼히 걸어낸 계절마다
귓볼에는 화사한 바람이 불었고
발소리의 질서는 굳건했다
그러나 길이 없는 산기슭에서
이제는 홀로 길을 찾아야 할 때
각기 더 가파른 길을 쉼 없이 오르듯
스스로 환한 꽃송이가 되어야 할 때
예감 한번 없이 그래서 아프게
후두두 꽃잎 지고 만 흐린 날들이어서
걸어가야 할 길이 아득하겠지만
모든 꽃은 뿌리가 관장한 무수한 물길이
생생한 꽃잎을 펼쳐 왔으니
가자, 떨군 꽃잎들 뿌리를 덮어 주며
산골짝을 흘러내려 간 구름을 찾아
가자, 아직도 남은 삶을 철저히 사랑하기에
지극할 수밖에 없는 달콤한 고독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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