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진행 경위서 - 이송우
한 놈을 뽑으면 여럿이 솟았다
엄마의 머릿속 새치는
솎아내도 늘기만 하였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이 좋아
더 열심히 책을 읽었지만
도대체 그는 언제쯤
엄마 새치를 뽑아 줄 것인가
내 어린 무릎에 놓인
엄마 머리는 무거웠다
심통이 날 때면
나는 여럿을 잡아 뽑았다
아버지 없는 나,
엉터리로 뽑은 새치 때문에
백발이 된 울 엄마
사랑하는 박인순 선생님
그대여
내 새치를 뽑지 마시게
이것이 단 한 올도 건드리지 않은
내 흰머리, 더딘 진행 경위서
*시집/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 실천문학사
수면 장애 - 이송우
비 그친 오후 청파동 길바닥
돌맹이처럼 굴러다니는 사람들
저 감은 눈과 벌린 입속에서
나는 잠을 잔다
키우던 개를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때려잡던 복날 어른들처럼
순해진 고깃살을 소주로 삼키곤
나는 코를 곤다
돌림병으로 문 닫은 유령 도시
흰옷 입은 의사들이 보이지 않는다
단식하는 이들 옆에서 닭 다리를 뜯거나
발인일에 고인의 비난 성명 따위,
사람이 아프든 죽든 밥그릇은 중요하기에
기면 발작증 환자들처럼
언제 어디서든 나는
수없이 골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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