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릎의 인력 - 고태관

마루안 2021. 8. 27. 19:40

 

 

무릎의 인력 - 고태관

 

 

마주 놓인 의자 사이가 좁다

닿지 않으려고 허리를 세워 앉는데 눈이 마주치고

 

기차도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거 알아요

터널 속에서 말을 건네 온다

 

분명히 아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점점 흐려질 거예요

달리는 시간만큼 멈춰야 도착할 수 있어요

 

내리는 사람도 타는 승객도 없는 간이역

차창 밖 안개가 터널 입구처럼 멎어 있다

 

스르르 감긴 눈이 출구 없는 잠결 속으로 달려갔다가

차창 턱에 기댄 팔의 각도가 허물어지는 순간

 

눈꺼풀까지 따라온 어둠이 마른 입술에 묻어나곤 했다

곧 종착역이에요

 

앞질러 갈 열차를 먼저 보내느라 서행하는 것도

오래 들이마신 숨을 서서히 내쉬는 일

 

캄캄한 동굴을 헤쳐 나오느라 연착된 몇 분 정도는

터널을 벗느라 지불한 빈틈인 거죠

 

가볍게 부딪혀 오는 무릎

정차를 위해 속도를 줄일 때마다 플랫폼이 떨리고 있었다

 

 

*시집/ 네가 빌었던 소원이 나였으면/ 걷는사람

 

 

 

 

 

 

유리관람차 - 고태관

 

 

아무도 타지 않은 관람차가 돌아가고

 

그림자의 길이는 자전과 공전에 따라 달라집니다

햇살로 덧칠된 호수에서

새들이 날개를 펴기도 전에 영혼 먼저 날아오릅니다

 

시간이 빛보다 빨라진다면

이생과 전생을 나눌 수 없겠지

제 울음에 놀란 새가 주위를 살핍니다

 

관람차가 느리게 되돌아오는 동안

날아간 영혼은 영영 돌아오지 않습니다

 

내가 나인지 아는 건 너무 어려워

펼쳐진 책이 되어 떠올랐다가

유리에 비친 날개를 보고 날갯짓을 멈추기도 합니다

 

호수 위로 내려앉습니다

헐겁게 잠겼던 관람차 문이 슬며시 열립니다

 

정상까지 올라간 햇살에겐 그림자가 없고

새들이 하나씩 떠납니다

 

아무도 타지 않은 지구는 돌아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