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소 - 권수진

마루안 2021. 8. 9. 21:32

 

 

시소 - 권수진

 

 

내가 바닥을 치는 순간 당신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지

당신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

내가 공중으로 치솟아 오른 것처럼

 

늘 서로의 균형점을 맞추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수평적 사이가 아니란 걸 알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어

 

서로 얼굴 마주 보며 대면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지

농담을 주고받는 거리는 아니었어

 

때론 운명의 장난 같기도 했어

사람과 사람 사이

살면서 엎치락뒤치락해도

이렇게 엇갈린 경우는 없었으니까

 

해맑게 뛰어놀던 아이들 하나둘씩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빈 놀이터에서

너와 단둘이 남던 어느 날

 

어색한 기운이 주변을 맴도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혼자서 도저히 풀 수 없는 숙제 같았어

 

해 질 녘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한쪽이 추락할수록

다른 쪽이 날개를 다는 이유를

아직 잘 모르고 살아

 

 

*시집/ 시골시인-K / 걷는사람

 

 

 

 

 

 

불혹 - 권수진

 

 

더러는 결혼을 하고

더러는 이혼을 했다

 

더러는 자랑을 하고

더러는 후회를 했다

 

하루에 두 끼를 먹었다

음식을 줄여도 배가 튀어나왔다

 

아픈 상처는 잘 낫지 않고

약봉지가 늘어갔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는 눈을 가졌고

세상은 보기보다 유혹이 많다는 걸

 

유혹하는 것보다

유혹을 뿌리치는 힘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 시작했다

 

더러는 금주를 하고

더러는 금연을 했다

 

새로운 만남이 늘어날수록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재혼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몇은 결혼을 후회했다

 

혼자 사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각자의 견고한 벽을 쌓았다

 

새해에 비는 소원이 줄었고

정확한 나이가 몇인지

자주 헷갈렸다

 

가끔 만사를 제쳐 두고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영영 먼 곳으로 떠난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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