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 조기조
그는 오랫동안 나사를 박았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단단한 결속을 꿈꾸는 나사를
잘 보이지 않는 구멍을 향해
고개를 처박고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힘껏 박고 돌리고 조여도
어느새 슬그머니 풀려버리던 나사
나사를 박다 풀려버린 그의 몸에도
나사 몇 개를 박아 넣었다
목뼈 한 토막을 잘라내고
세 마디를 한 토막으로 고정시켰다
그 나사들이 풀릴 때
그의 몸이 한줌 재로 바뀔 때
누군가 옆에 있게 된다면
이런 한 문장으로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는 나사를 몇 개를 남기고 갔다
*시집/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 도서출판 b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 - 조기조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결할 수 없는 곤란에 부딪힐 때
당신은 기술자를 찾는다
컴퓨터가 고장일 때
보일러가 자동차가 멈췄을 때
당신은 기술자를 부른다
기술자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도
당신은 문제를 해결해달라 청한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어디선가 누군가가
부르면 달려가는 기술자
당신이 부자든 가난뱅이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상관없이
가장 곤란할 때 기술자가 등장한다.
# 조기조 시인은 1963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낡은 기계>, <기름 美人>,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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