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유산 - 조기조

마루안 2021. 8. 8. 21:42

 

 

유산 - 조기조


그는 오랫동안 나사를 박았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단단한 결속을 꿈꾸는 나사를

잘 보이지 않는 구멍을 향해
고개를 처박고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힘껏 박고 돌리고 조여도
어느새 슬그머니 풀려버리던 나사

나사를 박다 풀려버린 그의 몸에도
나사 몇 개를 박아 넣었다
목뼈 한 토막을 잘라내고
세 마디를 한 토막으로 고정시켰다

그 나사들이 풀릴 때
그의 몸이 한줌 재로 바뀔 때
누군가 옆에 있게 된다면
이런 한 문장으로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는 나사를 몇 개를 남기고 갔다

 

 

*시집/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 도서출판 b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 - 조기조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결할 수 없는 곤란에 부딪힐 때

당신은 기술자를 찾는다

 

컴퓨터가 고장일 때

보일러가 자동차가 멈췄을 때

당신은 기술자를 부른다

 

기술자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도

당신은 문제를 해결해달라 청한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어디선가 누군가가

부르면 달려가는 기술자

 

당신이 부자든 가난뱅이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상관없이

가장 곤란할 때 기술자가 등장한다.

 

 

 

 

# 조기조 시인은 1963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낡은 기계>, <기름 美人>,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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