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발이 시린 계절 - 백애송

마루안 2021. 8. 3. 22:16

 

 

발이 시린 계절 - 백애송

 

 

말을 거는 명함 앞에 선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게시판 앞에 우두커니, 지나가는 버스에 손을 흔들고 어젯밤 지나친 나무의 손을 잡는다

흘러가지 않는 구름 아래를 서성인다

 

음소거 된 TV 앞

엿보는 그들의 세상은 은밀하고

패륜인지 불륜인지

알 수 없는 거리두기에는

슬픔이 빠져 있다

 

나의 이름인지도 모를 글자 앞에서

덧셈과 뺄셈을 한다

농담과 진담의 수위에 대해

 

아무에게도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거는 사람들

 

발이 시린 계절은

누구에게나 왔지만

누구나 허락하지 않았다

 

 

*시집/ 우리는 어쩌다 어딘가에서 마주치더라도/ 걷는사람

 

 

 

 

 

 

불혹의 문장 - 백애송

 

 

손톱으로 저며지지 않는

노란 결을 따라 칼날을 꽂는다

 

점점 커지는 시간으로부터 멀어진 너는

보이지 않는 단단한 결을 세우고 있다

 

세상 한 귀퉁이를 마저 도려내며

거꾸로 흐르는 바삭한 하루에 대해 생각한다

 

적막을 홀짝이는 메마른 겨를에 대해 생각한다

 

타인의 삶에 끼어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마른 날들

검붉게 떨어진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순간들

 

뜻이 통하지 않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이

고딕체로 지나간다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불혹의 문장이

허공에 발을 뻗는다

낮은 음계를 향해 떨어진다

 

무뎌지는 칼날의 속도에 맞추어

뿌옇게 흐려지는 숨결을 저며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