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시린 계절 - 백애송
말을 거는 명함 앞에 선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게시판 앞에 우두커니, 지나가는 버스에 손을 흔들고 어젯밤 지나친 나무의 손을 잡는다
흘러가지 않는 구름 아래를 서성인다
음소거 된 TV 앞
엿보는 그들의 세상은 은밀하고
패륜인지 불륜인지
알 수 없는 거리두기에는
슬픔이 빠져 있다
나의 이름인지도 모를 글자 앞에서
덧셈과 뺄셈을 한다
농담과 진담의 수위에 대해
아무에게도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거는 사람들
발이 시린 계절은
누구에게나 왔지만
누구나 허락하지 않았다
*시집/ 우리는 어쩌다 어딘가에서 마주치더라도/ 걷는사람
불혹의 문장 - 백애송
손톱으로 저며지지 않는
노란 결을 따라 칼날을 꽂는다
점점 커지는 시간으로부터 멀어진 너는
보이지 않는 단단한 결을 세우고 있다
세상 한 귀퉁이를 마저 도려내며
거꾸로 흐르는 바삭한 하루에 대해 생각한다
적막을 홀짝이는 메마른 겨를에 대해 생각한다
타인의 삶에 끼어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마른 날들
검붉게 떨어진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순간들
뜻이 통하지 않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이
고딕체로 지나간다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불혹의 문장이
허공에 발을 뻗는다
낮은 음계를 향해 떨어진다
무뎌지는 칼날의 속도에 맞추어
뿌옇게 흐려지는 숨결을 저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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