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하울링 - 김륭

마루안 2021. 7. 8. 19:27

 

 

하울링 - 김륭


참 신기하지

혼자 먹는 라면 한 그릇
파르르 손이 떨릴 만한 그런 일 같기도 한데
면발 한 줄 흘리지 않고 비우는,

어느 여름날엔 양은냄비 가득 빗줄기 담아 와서는
병뚜껑보다 작게 오므린 그 입 좀 열어보라고
이런 게 빛이라고, 빛보다 목이 길어진
영혼의 보푸라기라고 몽실몽실 수줍게 늙은 너구리처럼
말한 것도 같은데

면발 한 줄 흘리지 않는
라면 한 그릇, 내가 모아두었던
네 목소리 한 그릇

물끄러미 15층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고양이처럼, 발소리 죽이고 걸었던 어느 구름 속에서는
지금쯤 비가 일어서는 중이겠지만,

참 애가 타

너무 길어서 다시 쓸 수 없는 한 줄
쓰지 못해 지울 수도 없는
한 줄

흥건하게 내가 나에게 무슨 일인가를
저지른 것 같은데 면발 한 줄 흘리지 않고
바닥을 비우는,

넌 모르겠지만 난 참
내가 나빠


*시집/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달을쏘다

 

 

 

 


장마 - 김륭


온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당신이
행여 간다는 이야기가 있었더라도 나는
모른다 끝까지

당신과 나의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 간다는 말은 없고 온다는 말만 남아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틀림없다 당신은 멀리서
혼자 울었고, 나는
걸었다




*시인의 말

집에 두고 온 복숭아를 보러 갔던 여자가
말했다, 꼭 같이 보러 가요.

검은색입니다, 당신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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