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눈물 혹은 장마 - 피재현

마루안 2021. 7. 6. 21:39

 

 

눈물 혹은 장마 - 피재현

 

 

한 줌의 바람이 불어 왔다

장마 중이었다

한 뼘의 비가 바람 속에 들어 있다

다행이 장마 중이었다

눈물을 뚝 뚝 떼어

-마치 물이 끓고 있는 냄비 속으로

수제비 반죽을 떼어 던지듯이-

허공 중에 던졌다

 

이제 공복의 허기를 채우고

일 하러 가리라

 

차양으로 가려진 하늘을

힐끗 쳐다보는 순간

수제비처럼 생긴 새들이

수직상승하고 있다

날개의 더운 물기를 허공 중에

털어냈다

장마 중이었다

다행히 장마 중이었다

 

 

*시집, 우는 시간, 애지출판

 

 

 

 

 

 

내가 지상에서 - 피재현

 

 

때묻은 옷을 빨아 말리며

유월의 볕이란 참 대단한 정열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바람 한 점 도움 없이 천공의 물기를 빨아

뱉어내는 흡입의 힘이란

내가 지상에 살면서 때로 우체국이나

기상관측대의 옥상에 펄럭이는 깃발이 되고 싶어 했던 것은,

바람이 나를 연모해 시시각각으로 휘날려오기를

바랐던 마음일 뿐,

내가 애써 머금은 고독이며 자유며 기름때까지

빨려버리고 싶어서는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은 때로 숫짐승만큼 고독해지고

사람은 때로 시궁창 연미나리처럼 순결해진다

 

 

 

 

# 피재현 시인은 1967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99년 계간 <사람의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우는 시간>, <원더우면 윤채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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