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 김유미
어디서부터 붉어졌을까
식구들은 돌아오지 않고 그림자는 서쪽까지 자라난다
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는 모자를 잠재우고
새는 구름의 모서리를 파헤친다
노을이 제 눈의 혈관을 가리킬 때
어둠은 아이의 눈물 자국을 닦는다
자두라는 관습을 익히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전해지는 맛들
제 발길에 걸려 넘어지는 고양이의 울음, 이물감을 쏟아 내는 수도, 나뭇가지에 걸린 다문 입, 인형의 머리에서 빗질되는 허공
구구단을 외울 때 불어난 틈들이
바람의 처마 아래에 쌓인다
닫을 때 포옹하고 열 때 경고하는 것처럼
삐걱대는 소리는 오래된 정의
울음을 삼키면 물러지는 나무가 생겼다
온몸이 붉어지는 생들이
세상의 뒷문에서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동안
저녁은 길을 잃은 자들의 숨결로
문밖을 배회했다
*시집/ 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 파란출판
극야 - 김유미
지하를 벗겨 내고 창을 닦고 싶어지면
팔목은 늘 외곽의 이정표처럼 헐거워진다
한 그릇에 담겨 있는 색깔이 되어
단칸에 나란히 누운 동생들은 열다섯 살, 열세 살
동생들의 말이 띄엄띄엄해지는 사이에도
웃어 주는 눈사람, 웃어 주는 쪽창, 웃어 주는 밥솥, 웃어 주는 거울, 웃어 주는 인형
극지에는
벽 속에서 걸어 나온 새까만 한낮,
새들이 얼어 버린 발목을 콕콕 찍으면 빛들이 흘러내린다는
구전이 있다
이곳에서 반짝이는 눈을 가진 것은
밖과 안을 묘사하고 있는 쪽창이라는 기관
한 명 두 명 세 명.....
우리는 밤하늘의 새로운 은하계로 발견되었다
두고두고 서랍으로 기록될 범위
느리게 진행되는 밀실의 공기가
되풀이되고 있는
# 김유미 시인은 전남 신안 출생으로 2014년 <시와 반시>로 등단했다. <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이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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