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흔들리며 고맙다고 - 김형로

마루안 2021. 5. 31. 19:27

 

 

흔들리며 고맙다고 - 김형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몸

몸의 주름이 펴지지 않는다

굽은 곳은 더 틀어지고

패인 곳은 더 깊어졌다

아픈 몸을 자주 미워했지만

몸은 나를 사랑하기만 했다

 

비극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

티격태격 도니

말 없던 몸이 말을 한다

귀에서 여치 소리 나고 눈에는 벌레가 난다고

무릎은 녹슨 돌쩌귀 되었다고

 

밤마다 몸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어떠셨냐

손으로 만지며 쓰다듬는다

 

몸이 답한다

힘닿는 데까지 가 보겠다고,

숨소리가 많이 얕아졌다

함부로 부렸구나

 

다음 생이 있거든

내가 몸이 될 테니 너는 내가 되거라

결기 없고 시류도 못 맞추는 내가

한쪽 쳐진 몸과 함께 오늘도 어제처럼 간다

 

절뚝절뚝 흔들리며 고맙다고

힘들면 잡고 서서

높다란 새를 함께 보면서

 

 

*시집/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 상상인

 

 

 

 

 

 

나이테, 끄응 - 김형로

 

 

꽃을 피우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고 한다

 

그렇겠지 새끼를 내는 일이 수월할 순 없겠지

한 해 한 번 아랫배 힘을 주면서

꽃숭어릴 달 때

끄응~하며 웅근 소리로 밀어내겠지

 

꽃을 일제히 미는 것은

일개 가지들이 감당할 일 아니어서

나무는 온몸 부르르 힘을 주는 거겠지

끄응, 동심원의 파장으로

밑둥치부터 우듬지까지 앓는 거겠지

 

몸피가 굽이치다 수피를 찢고

비명이 꽃으로 활짝 터지는 거겠지

파동 속으로 잦아드는 몸통

그제사 괄약근의 창은 동그랗게 닫히는 거겠지

 

힘쓸 때마다 괄약하게 써 놓은

온몸의 둥근 나이테

끄응

 

 

 

 

# 김형로 시인은 경남 창원 출생으로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미륵을 묻다>,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부산작가회의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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