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서성이다 - 박형욱

마루안 2021. 5. 30. 19:41

 

 

서성이다 - 박형욱

 

 

산중 고찰 경내에

머무는 나무는 고목이 되고

산비탈 계곡 따라

떠나는 물은 바다에 닿는다

 

한자리에 오래 머문다는 것과

쉼 없이 멀리 흐른다는 것은

모두 지극한 합장

 

언제던가

죽을 만큼 치열해본 적이

 

생의 절반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해

절집 마당 서성이는

그림자가 있다

 

 

*시집/ 이름을 달고 사는 것들의 슬픔/ 도서출판 지혜

 

 

 

 

 

 

남은 이력(履歷) - 박형욱

 

 

벽시계가 어느 날 멈췄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서

인간 수명도 건전지 같다는 생각에

살아온 이력을 더듬어 본다

 

십대에는 축구만 했다

이십대에는 이데올로기 과식에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나머지 이십 년은 산 속을

네 발로 기어다녔다

 

복기해볼수록

심장을 때리는 맥박

시계불알처럼 살기 위하여

가불까지 했다니

 

어디쯤 달렸는지

모르고 사는

건전지 위치

가늠 된다

 

휴~ 아직 뛴다!

 

 

 

 

# 박형욱 시인은 충북 충주 출생으로 <이름을 달고 사는 것들의 슬픔>이 첫 시집이다. 2000년에 귀농하여 밤나무 농장을 운영하며 시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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