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보낸 한철 - 이상국
-코로나 19를 견디며
살다 살다 그깟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 앞에 줄을 설 줄이야
그래도 고맙다
신통한 부적처럼
우환을 막아줘서 고맙고
속이 다 내비치는 안면을 가려줘서 고맙고
세수를 안 해도 사람들이 모르니까 더 고맙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육이오 동란까지 겪고 또 겪고
살다 살다 마스크 대란이 올 줄이야.
저들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벌레 군단
국경도 인종도 가리지 않는 인류 침공에
어벤저스 슈퍼히어로들도 속수무책인데
귓바퀴가 없으면 걸 데도 없는 저
손바닥만 한 천 조각이 지구를 구할 줄이야.
모든 화는 입으로 들어온다기에
쓸데없는 말 안 하고
나를 아끼고 남을 존중하며
마스크와 한철 보내고 나니
아무래도 내가 좀 커진 것 같다.
나라도 이전의 나라는 아닌 것 같다.
*시집/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
천장지구(天長地久) - 이상국
어떻든 세상은 정상이다.
주 오일제가 되고도 송아지 다리는 넷이고
죽니 사니 해도 주말이면
사람들은 벌떼처럼 맛집을 찾아나선다.
얼마나 외로우면 댓글주의자가 되었겠니.
다시 학교를 다닌다면
높은 사부 밑에서 구름과 물소리를 공부하자.
소소한 날들의 헌 마일리지를 모아
폭설 내리는 날 시뻘건 소 타고
저항령쯤 들어가거나
앳되고 앳되던 초등학교 때 선생님 보고 싶다.
생은 대부분 우연이고
사람은 사람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알던 사람들은 어느날 죽기도 했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컴컴한 노래방에 들어가 춤을 추겠니.
살아보니 집은 작은데 비밀번호가 너무 많다.
어떻든 세상은 오래되었고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이상국 시인은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으로 1976년 <심상>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뿔을 적시며>, <달은 아직 그 달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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