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대못이 박힌 자리 - 곽재구

마루안 2021. 4. 29. 21:36

 

 

대못이 박힌 자리 - 곽재구


사내가 망치로
대못을 박았다

못은 제 온몸을
나무 깊숙이 투입하였으므로
나무와 못은
서로 행복하였다

세월이 흘러
못은 붉게 물들어
바스러지고
나무의 몸에
빈 구멍 하나가 남았다

늙은 사내가
빈 구멍에 망치로
새 못을 박았다

나무는 제 몸 안에 남은
붉은 녹 몇개를 떨구고는
고요히
구멍과 함께 부셔졌다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 창비

 

 




화진포 - 곽재구


소금에 절인
고등어 두마리가
갈라진 배를 마주 대고
이팝나무꽃 핀 하늘을 바라보네

장돌림 오십년
늙은 생선 장수는 북관 바닷가 마을이 그리워
죽은 생선의 눈에 임자도 소금 북북 문지르다가
뭉개진 손톱 까만 손등으로 눈두덩을 비비네

하얀 모래의 살들
맨발로 함께 연을 날리던 누이야
해당화 피어 말없이 좋은 날
파도 소리 엄마 젖 냄새 풀풀 날리던 어시장 거리
대소쿠리에 생선 몇마리 받아 전을 펴던 누이야

개밥바라기별 반짝반짝 빛날 적
소쿠리에 담긴 수수팥떡과 초사흘 달빛
성글게 다가서던 비린 발소리가
엄마 젖 냄새보다 좋았던 누이야
전쟁 끝나고 다시는 얼굴 볼 수 없었던 누이야

누군들 아는가?
고등어가 한손으로 팔리는 건
살아서 퍼렇던 그리움의 날들
세월이 흘러 썩어 문드러질지 모를 외로움의 날들
달래주기 위한 떠돌이 생선 장수의 마음 씀임을
퀭한 눈두덩 아래 잠시 머문
촉촉하고 뿌연 외로운 불의 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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