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모르는 사이에 - 김점용

마루안 2021. 5. 2. 19:32

 

 

모르는 사이에 - 김점용


나는 왼쪽 엉덩이가 없어요
그래서 걸을 때 몹시 절어요
절룩절룩 다리가 바람인형 팔처럼 멋대로 움직이죠
그가 언제 떠났는지 정확히 몰라요
긴 수술 후에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사라지고 없었어요
왼쪽 엉덩이를 무척 사랑한 애인이 가져갔는지 몰라요
애인도 엉덩이도 연락이 되지 않아요
언제쯤 돌아올까요
늦더라도 오긴 할지
어쩌면 영영 안 올 수도 있겠죠
의사 선생님은 끝까지 희망을 가지라지만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벌써 삼 년이 다 돼 가는 걸요
모르는 사이에 꽃이 피고 아이들이 자라듯
오늘은 저도 모르는 새 비가 왔네요
비가 오고
또 무엇이 올지 몰라
바깥에 놓인 의자를 조금 기울였어요
의자 왼쪽에 고인 물이 가만히 흘러내렸어요

 

*시집/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하였네/ 걷는사람

 

 

 

 

 

 

엘리베이터 앞에서 - 김점용


이 엘리베이터 문은 한쪽만 열려야 한다
그도 몸이 불편한 사람
나와 같이 크고 둥근 휠체어를 타고 올 것이다

저 문이 열리면
검은 바퀴를 밀면서 내게로 올 것이다
그림자처럼 스르륵 와서 그대로 나의 절반이 되어 줄 것이다
문이 닫히기 전 순식간에
내 절반의 나쁜 몸을 가져가고
바로 된 그의 몸을 붙여 놓을 것이다

그는 지금 막 수술실에서 나와 올라오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진을 찍으러 내려오는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몰라야 한다

어쨌든 그는 올 것이다
딩동! 소리가 울리면
주렁주렁 링거를 달고 하늘색 담요에 덮여
아무것도 모른 채
조용히 미끄러지듯 내게로 올 것이다

거울처럼 환하게
나를 비추는 저 은빛 엘리베이터
그러니까 양쪽으로 갈라지는 저 문은
반드시 한쪽만 열려야 한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 같은 그 사람 - 박용재  (0) 2021.05.02
가족 - 석미화  (0) 2021.05.02
시간은 마디를 가졌다 - 오두섭  (0) 2021.05.01
마스크와 보낸 한철 - 이상국  (0) 2021.04.30
어둠의 원본 - 김대호  (0) 2021.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