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호더스증후군 - 배정숙

마루안 2020. 11. 30. 19:20

 

 

호더스증후군 - 배정숙


돌지 않는 행성에서 허공은 바람을 다스리지 못한다
작년에 핀 안개꽃이 자욱한 그곳은 불우함을 개의치 않는 나만의 제국 가지고 싶은 그 안의 꽃방이다

벽은 놀랍도록 단단해서 쓸모없는 오후가 가두어지고 낮달 꼬챙이가 박혀서 기억이 빠지지 않는다 길 찾는 달그림자만 소용과 오물 사이를 빠져나간다

나비가 묻혀온 꽃가루에서 쏟아지는 것은 모두 나의 당신
그리움의 커다란 무덤 속으로 빨려들어 가면 스스로 문이 닫히고
구르지 않는 수정이 된다
구르지 않는 돌이 된다
녹지 않는 얼음이 된다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는 철통같은 우주
당신의 이름을 소장하는 가치에 모두를 건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희고 따뜻하여 그곳에 영원의 무게를 묶어놓았을 때 안쪽의 광채는 다름 아닌 붉은 광기

별자리 하나의 향기에 잔존을 지탱한지라
유일하게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방식인지라
귀 기울일 수 없는 다른 유혹은 모두 불경스러운 울음소리인 것

빈 하늘을 두고서도 품으로만 파고드는 나이테처럼 다스려지지 않는 애물 그의 심장 안에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시집/ 좁은 골목에서 편견을 학습했다/ 시와표현

 

 

 

 

 

 

신데렐라 콤플렉스 - 배정숙


새끼의 붉은 입에다 뼈 빠지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어미제비가 돌아오지 않았다 옹색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비제비는 늦은 밤에 비틀거렸다

봄의 날개는 그렇게 해체되고 있었다

그 불구의 봄이 배후로 드러나면서 늑골을 치받는 사랑의 기호에서 모음이 사라졌다 애벌레도 나비가 되지 못한 채 안달 난 비상 뒤의 예정된 추락
후미진 바닥은 눅눅했다
돌아갈 수 없는 유리구두
슬픔의 더듬이가 문 밖을 더듬거렸다
부재의 허허로움이 저문 저녁과 섞일 때 이 허물고 싶은 사실을 어디쯤에서 뼈를 발라내고 살을 먹일까

어린것의 입에

-세상만사 지름길이 워디 있나?
-저두 사람인디 저두 사람인디 제 핏줄인디 내가 원제까지 산다구
서리아침 서릿발보다 더 맘 시린 손자를 어린이집 차에 안아 태우는 할머니
단장의 나이테가 달려가는 노란 차를 따라서 길게 풀린다


 

 

*시인의 말

나의 탐욕을 스캔하는 일이었다면

부디 낮달이길
혹은 빙어이길

두려운 나를 달래는 일이었나?

여행길에서는 속눈썹도 집이라니
모두 내려놓고 시처럼 살라는 한 행을 얻기 위해
몸살 하는 긴 행로

오늘 밤에도 노독을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