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녹취의 선입견 - 정덕재
나는 골목이 사라진 이후
생선 굽는 냄새 나지 않고
주머니에서 부딪히는
한 주먹의 구슬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주차 금지 표지판과
걸어서 넘기에 숨 가쁜
해발 4미터의 과속방지턱이
서운하다고 말했다
골목 벼람박에
좋아하는 여자아이 이름을 몰래 쓰던 백묵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던 시절이
그립다고 말했다
여든다섯 박창규 할아버지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외풍 없는 아파트에 살아
지금은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숨 참다가 숨넘어갈 뻔한 시절이
지긋지긋하다며
냄새 없는 훈훈한 화장실에서
잠이 든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찬물 따뜻한 물
마구 쏟아져
따뜻한 손으로
칠십 년 전 만났던 윤팔례의 손을
꼬옥 한 번
잡고 싶다고 말했다
*시집/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걷는사람
장례식장 육개장을 먹으며 - 정덕재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죽은 사람은 죽어야 하느냐
잊지 못해
잊히지 않는
떠나지 못한 영혼이
육개장 안에 풍덩 빠져 있는데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말고
죽은 사람 살려내야 한다며
육개장 웅덩이에 지푸라기라도
내려보내야 하지 않는가
썩은 동아줄을 잡은 십 분 남짓의 기억이 흔들려
차마 맛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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