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구술녹취의 선입견 - 정덕재

마루안 2020. 11. 30. 19:38

 

 

구술녹취의 선입견 - 정덕재

 

 

나는 골목이 사라진 이후

생선 굽는 냄새 나지 않고

주머니에서 부딪히는

한 주먹의 구슬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주차 금지 표지판과

걸어서 넘기에 숨 가쁜

해발 4미터의 과속방지턱이

서운하다고 말했다

골목 벼람박에

좋아하는 여자아이 이름을 몰래 쓰던 백묵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던 시절이

그립다고 말했다

 

여든다섯 박창규 할아버지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외풍 없는 아파트에 살아

지금은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숨 참다가 숨넘어갈 뻔한 시절이

지긋지긋하다며

냄새 없는 훈훈한 화장실에서

잠이 든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찬물 따뜻한 물

마구 쏟아져

따뜻한 손으로

칠십 년 전 만났던 윤팔례의 손을

꼬옥 한 번

잡고 싶다고 말했다

 

 

*시집/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걷는사람

 

 

 

 

 

 

장례식장 육개장을 먹으며 - 정덕재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죽은 사람은 죽어야 하느냐

잊지 못해

잊히지 않는

떠나지 못한 영혼이

육개장 안에 풍덩 빠져 있는데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말고

죽은 사람 살려내야 한다며

육개장 웅덩이에 지푸라기라도

내려보내야 하지 않는가

썩은 동아줄을 잡은 십 분 남짓의 기억이 흔들려

차마 맛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