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숨어 사는 영혼처럼 - 강인한

마루안 2020. 9. 26. 21:47

 

 

숨어 사는 영혼처럼 - 강인한


외딴 섬으로 가는 다리였다.
버스는 오 분쯤 달려 섬에 도착했다.
다리를 건널 때 창밖으로 바다가 아득하였다.

파랗게 보이는 높고 소슬한 하늘,
아래에 어두운 보랏빛,
그 아래 먹구름과 양털구름이 뒤섞이고.

청동의 파도주름과 맑은 햇빛, 색색의 구름들,
높은 데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사이사이 구름을 뚫고
단숨에 꽂히는 바닥은 은빛 바다였다.

햇빛을 줄기줄기 온몸에 받아 적는
보얀 구름커튼에 잡티 하나.

차창에 묻은 티끌일까 손가락으로 헤집는다.
점점 키워보니 아뜩한 하늘에
아, 숨어 사는 영혼처럼 혼자 날고 있는 새였다.


*시집/ 두 개의 인상/ 현대시학사

 

 

 

 

 

 

깊은 숯을 마음에 다스리고 - 강인한


산 빛깔이 엷어지고
슬픔은 극약처럼 짙어진다.
몰래 숨어 지켜보는 어떤 눈빛이
서늘한 당신 이마에 드리웠다
걷히어간다.

밤 내내 기울어 중천을 흐르는 달이여.

깊은 숯을 마음에 다스리고
내 휘황히 불타는 손을 들어
그대 어깨에 묻은 절반의 어둠을
가만히 덜어낸다.

차라리 보이지 않는 남은 어둠을 향하여
더 엷은 그늘에 나래를 부스러뜨리는
빛의 벌레,
어둠 속에 스러진 한 줄기 흰 그을음.
몸 둘 곳 없는
아, 지상의 한 사람 투명한 갈증이
그대 앞에 마주 서 있다.

 

 

 

# 강인한 시인은 1944년 전북 정읍 출생으로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이상기후>, <불꽃>, <전라도 시인>, <우리나라 날씨>, <칼레의 시민들>, <황홀한 물살>, <푸른 심연>, <입술>, <강변북로>, <튤립이 보내온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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