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자미 꽃그늘 돌아서는 - 김윤배

마루안 2020. 7. 31. 21:56

 

 

자미 꽃그늘 돌아서는 - 김윤배


분홍 꽃숭어리에서 몸내가 올라왔다

향기이기도 하고 정한이기도 했다
자미를 두고 설렘은 후회거나 탄식이었지만
홀로 피고 이울기를 한 계절이다
자미는 마지막일지 모르는 꽃망울을 터뜨렸다

자미꽃 여름은 내내 혼돈의 서사들이다

우레 다녀가고 낙화의 새벽 뒤엉키는 일 잦았다
먼저 핀 꽃이 먼저 시들지 않는 모순, 낙화의 길에 들어서
뛰어내릴 순간을 찾는 일은 더 혼란스러웠다

보이지 않는 질서가 꽃 피우고 지우는 밀명, 이끌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끝내, 자미 꽃그늘 돌아서는 여름 한낮


*시집/ 마침내, 네가 비밀이 되었다/ 휴먼앤북스

 

 

 

 

 

미선나무의 흰 꽃의 시간 - 김윤배


척박한 봄이었으니 꽃차례조차 무한총상이다

너는 그렇게 봄의 시간을 묶고 삶을 묶는다
속수무책, 부러지기 쉬운 줄기를 움켜쥐고
잎이 피기 전의 시간을 담아낸
너는 백의의 정령이거나 성녀겠다
너는 개화의 아픔을 기억해서는 안된다
만개 아니었다면 너를 부르지 않았을,
매혹은 쉬이 무너지는 육체여서 슬펐던 봄날이다
너를 이곳으로 이주 시킨 나쁜 남자를 생각한다
순백의 시간 건너며 몸빛이 변해가는 걸
몰랐다면 그건 죄다 싶은 봄날이다
이제는 개화의 통증을 피워내
햇빛 머물게 하는 너를 몰랐다 말하고 싶다
너를 몰랐으므로 봄날을 몰랐을
봄꽃, 그 난망의 생을 지켜볼 뿐

미선이어서 더 아릿한 희디흰



 

*시인의 말

안타까움으로 세상을 읽는다.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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