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발칙한 생각 - 조성국

마루안 2020. 8. 1. 19:49

 

 

발칙한 생각 - 조성국


사업한답시고, 영업한답시고
진탕 통음한 단란주점 모자란 술값 대신
속옷까지 홀라당 저당 잡히고
쫓겨난 주제에
고주망태의 알몸이
낯부끄럽고 쪽팔리는지는 아는지, 그 정신에도
업소 청소용 검정 비닐봉지에다
눈구멍만 두 개 뚫어
가면 쓰듯 머리에 뒤집어쓰고
버젓이 아랫도리 벌거벗은 채 집에까지 냅다 뛰는

꿈 깨고 나서부터 하여튼
얼굴에 시커먼 철면피만 깔면 된다는 이념으로
넉살 좋게 밥 빌러 가는 접대의 발걸음
한결 가뿐해지는 것이었다


*시집/ 나만 멀쩡해서 미안해/ 문학수첩


 

 



한 식구 - 조성국


절집 근방까지
전도 나온 목사를 쳐다보는 스님의 눈빛이
그리 곱지 않았다
또 한바탕 치고받기라도 할 듯 목사도 도끼눈을 떴다
마을 사람을
제각기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힘겨루기 하는
이번 참에는
목사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일주문처럼 서 있는 절간 오리나무
벼락 맞아 중동이 꺾인 요번에는 교회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중세 성 마루 같은 흰 벽과 지붕 첨탑의
십자가 테두리 따라 깜빡이 꼬마전구 불이 반짝반짝 빛났으므로
목사가 승리했다고 여겼다
주 예수 크라이스트가 강령한 듯이
기쁘다, 찬송도 하였다
성탄 선물 한껏 고대하며 풀방구리 쥐구멍 드나들듯
뻔질나게 오갔다
부처님 오시는 초파일 어간에는
직통으로 벼락 맞은 흉터의 오리나무에 사리처럼 움튼 연둣빛 씨방울마냥
고물고물 내밀며 공걍간의 산채 밥 꽤나 축냈다
줄줄이 연등 걸어 달듯 그저 한 동네 깃들어 사는 한 식구라고
신자가 돼 주었다 배교한 목사가 스님이 된 것같이
파계한 중이 전도사 된 것같이 절실한 신도가 돼 주었다 번갈아 가며
번갈아 가며 열렬한 광신도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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