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배를 타야겠다 - 이강산
꼭 한 사람 찾아가야겠다
웅크리고 앉아 바다를 뒤집어쓴 섬이 컥컥, 숨넘어가는 소리로 뒤척여 바다를 잡아당기다 잠을 깼다
섬 홀로 두고 온 날은 꿈도 섬처럼 아득하다
닻을 내릴 틈도 없이 사라진다
팽나무 아래서 슬그머니 바다를 찔러보던 나처럼 지금쯤 섬도 선착장에 앉아 밀물을 집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다고 배가 달려오는 게 아니다
섬도 안다
외로워야 먼 길이 가까워진다
찾아갈 사람이 보인다
늦기 전, 첫배를 타야겠다
*시집/ 하모니카를 찾아서/ 천년의시작
손님 - 이강산
고향여인숙 9호실 불이 켜지자 간판 불이 꺼졌다
나는 또 마지막 손님인 모양이다
명성식관 소머리국밥집은 내 앞에서 문이 닫혔다
나는 속병이 심해져서 맨밥만 먹을 것인데,
이대로 잠들면 빈방처럼 속이 캄캄해질 것이다
서쪽 바닷가의 불 꺼지는 시간을 모르고 너무 멀리 밤길을 잡았다
느린 걸음을 탓할 이유가 없다
부스러진 보름달로 속을 채우며 거울을 본다
그러고 보면 여기까지 닿는 동안 내 빈방에도 하나둘 손님이 들었다
정선 구절리의 눈보라와 소청도 동백은 겨우내 달방 손님이다
오늘 밤 9호실 십오 촉 전등 같은 불 하나가 또 켜졌으므로
사흘째 빗발이 숙면 중이므로
나도 이쯤에서 내 간판의 불을 끌 때,
나는 먼바다를 건너온 밀물의 신발을 방 안에 들여놓는다
*시인의 말
사람의 말이 한 마디도 닿지 않는 날이 늘어간다.
외연도 동백처럼 홀로 붉어지는 날들이다.
길 떠나면 어디서든 섬이 되고
어디서든 내가 피고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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