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지개는 왜 북쪽에서만 뜨는 걸까 - 정훈교

마루안 2020. 6. 29. 22:18

 

 

무지개는 왜 북쪽에서만 뜨는 걸까 - 정훈교


두 아들의 어미였다가
두 아비의 아내였다가 흔적도 없이 무너진, 그녀에게

밤마다 혓바늘이 돋아납니다
그의 입 속엔 물가자미의 등가시가 자라고 있습니다

월요일엔 붉은 가시가,
목요일엔 다 자란 흰 가시가 손등에 피어납니다

오호츠크해 어디쯤에서 왔다는데
자꾸만 미워집니다

뭍을 떠나왔다는 그의 이야기는
입을 떠나왔다는 그의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에요

촉수에서 돋아난
그녀가

달을 찌르고, 배꼽을 찌릅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물가자미의 등가시는 더욱 환합니다

그믐이 되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도통 측백나무 잎 속으로 당신을 밀어 넣는, 그녀에게


*시집/ 나는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 시인보호구역

 

 

 

 

 

 

단편소설, 벼락에 관한 못된 편견 - 정훈교


아버지는 첩을 들이셨다
아버지는 하늘을 낳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버지였던 적이 없었다

가시 없는 낙뢰와 폭우를 쏟아내며 각혈하듯 돌아가셨다 잠이 깊어 도저히 시간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마지막 밤까지 잠만 풀어 놓으셨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잠이 당신을 잡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불경기에도 매일매일 내일도 푸른 날이 계속 될 거라고 최면을 걸었다

한때는 멀고도 먼 은하계를 유랑하셨다고 하는대 그 역시 나서서 그랬노라 증명해주는 이는 없다 다만 새벽녘 감꽃이 떨어지듯 아이가 떨어지고서야 막연히 짐작하는 정도다 어느 행성에서 고독하게 잠겨 있다가 이쪽으로 넘어왔는지 402호 차트는 말해주지 않는다 담당 의사도 수간호사도 낙태에 관한 보고서만 쓸 줄 알았지 딱 부러지게 퇴원하라는 말은 못하지

어쩌면 내가 아는, 당신도 족보에 없거나 미스터리이거나 연구대상이다



 

*시인의 말

여전히 어렵다. 당신을 읽고 쓰는 일
하루동안 먹먹하였다가, 또 하루동안
방황하였던 일, 당신은 여전히 낯선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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