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선짓국을 끓이며 - 김옥종

마루안 2020. 6. 28. 19:11

 

 

선짓국을 끓이며 - 김옥종


내 지금 끓이는 선짓국처럼
너와의 사랑도
아미노산에 묻혀 거품처럼 뚝배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슬픔은 그 어떤 슬픔을 더해도
흘러넘치지 않던데 말이다
오직 내 슬픔만이 넘치는 것 같던 날
시작은 머물던 별을 떠나
이 행성에 인간의 표피를 가지고 태어나면서부터
남들이 하는 첫울음을 나는 첫 웃음으로 시작했지
심지를 깊게 드리우고 살아가는 것이 숙명처럼
느껴질 때 누르고 눌러서 정제된 슬픔이 정류해낸
보드카로
늑대처럼 토굴에 누워 혈소판에 가두어 놓으면서부터
사랑을 머리에서 심장 쪽으로 옮겨 놓기 시작했다
그리움이 종유석처럼 뾰쪽해질 때
횡격막 근처에 머물러 있는
선혈을 찔러 깨우리라
봉분을 파헤치듯이 건드려 깨우리라
네게 이 끓는 피를 해장국으로 내어줄 수 있다면
내 슬픔의 시작이 첫울음이 아니라
첫 웃음이 되어도 좋은 날에
이 행성을 떠나
내 별로 돌아가리라


*시집/ 민어의 노래/ 휴먼앤북스

 

 

 

 

 

 

더덕무침 - 김옥종


그리움이 성성하더니
끝내 장침같이 뇌리에
꽂히던 밤
더덕 꽃 등불 켜놓고 기다리다가
침잠하던 속내를 꺼내 들어 읽는다

썩을 년
사랑한다고나 하지 말 것이지.



 

# 김옥종 시인은 1969년 전남 신안의 섬 지도에서 출생했다. 2015년 <시와경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한국인 최초 K-1 이종격투기 선수였다.  현재 광주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의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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