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저녁의 푸른 유리 - 이정훈

마루안 2020. 6. 27. 20:00

 

 

저녁의 푸른 유리 - 이정훈

 

 

널 어디서 본 것 같다

 

쏘가리 삼촌이라 불렸지 쏘가리 애인이라 했고 파란 물 들어라, 새잎 피고 덤불 시들 때 쑥 뜯어 수경만 헹궜다 친구들은 물 밖에서 군대에 가고 결혼하고

 

아이들은 물엣것처럼 자라지 바위 그늘 돌무더기와 굴속에서 빛나던 살빛을 사랑했다 말할 수 있을까 삽날 같은 꼬리 끝으로 무얼 하는지 알지 물 위에 똬리 틀고 둥둥 떠내려 가는 것도 보았어

 

돌 이불 떼어 쓰고 겨울잠 자던 물고기들의 처마 떠내려간 흔적을 메우며 떠내려온 바위 밑을 흘러간다. 내 강물, 투신하는 눈발처럼 빗방울처럼 아이들 흔적 없고 친구들과 애인들은 아프거나 바쁘다

 

이젠 아무것도 잡지 않을 거라네, 물은 깊고 해는 일찍 져 강변에 돌처럼 박혀 쏘가리를 생각하시게 면도날 아가미와 열세개의 등 가시 그리고 가장 굵고 억센 가시, 나는 날 어디에 쓰려는 걸까

 

샘물에서만 사는 물고기를 만난 적 있다 돌 틈에서 할딱거리던 네 고향은 먼 상류 잡지 않았지, 결국 살지 못했겠지만 흰창이 없는 눈꺼풀도 없는

 

어둠이 솟아나는 동굴이 있다 하늘을 건너오는 쓸쓸하고 푸른

 

 

*시집/ 쏘가리, 호랑이/ 창비

 

 

 

 

 

 

청어 - 이정훈

 

 

눈이나 감고 죽지,

어물전 청어 보면 할애비 생각

청어 한번 먹었으면

석달 열흘 소떼 몰고 다니다

추적추적 비 내리던 늦가을 저녁

원산 어름 주막집 봉노

그 청어를 먹었으면

엄마와 형이

주문진으로 강릉으로 암만 다녀봐도

청어는 그 무렵 보이질 않아

죽어서도 그리운 먼 북쪽이란

잇바디에 새어나가던 물거품의 기억이란

화로의 기름 연기처럼

할애비 등판에 무럭무럭 김 오를 때

나는 새끼 청어

어느 물 밑을 떠돌고 있었을까

눈에서 자라난 것들이 눈보다 더 커져

몸보다 더 무거워져

아가미 가득 배어나오는 소금 물살

알전구보다 환한 빛으로

원산 바다를 건너고 북태평양을 지나고

수평선 가득 노란 알이 지천이라는

청어들의 바다에서

아 아, 입 벌리고

눈이라도 쓸어줄까,

얼음상자 속 저 푸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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