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침, 뻐꾸기가 운다 - 이강산

마루안 2020. 6. 27. 19:39

 

 

마침, 뻐꾸기가 운다 - 이강산


옥천읍 삼청리 삼청저수지 지나 문 닫은 향수 한우 공장 마당 죽은 나뭇가지에 산비둘기 두 마리 앉아 비를 맞는다

비는 마침 장맛비,
홀로 우뚝한 나무 곁은 나무처럼 텅 비었다

지나가는 전깃줄이 전부다
장맛비가 전깃줄인 줄 알고 날아오르다 전깃줄에 걸린 참새 한 마리가 전부다

저만치 맞은편 덤불 속에 개복숭아 나무가 숨어있긴 하다
장맛비를 피하다 넘어졌는지 온몸이 붉다

나는 나를 우산으로 가리며 복숭아 곁을 지난다
산비둘기와 참새와 전깃줄이 요지부동으로 힐긋거리는 눈치가 뻔하다

나를 지켜보겠다는 심산이다
참외밭이며 까투리를 그냥 지나쳤는데, 내가 개복숭아 따위를?

나는 개복숭아밭 언덕 위 산방 꽃집의 다섯 자매가 복숭아를 좋아할까, 백일 지난 다섯째의 젖병에 복숭아즙을 섞어도 탈이 없을까?
은근슬쩍 바라보았을 뿐이다

까투리가 날아간 용암사 뒷산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장마에도 산을 못 보았다

그날,
지나가던 사내에게 개복숭아가 털렸던 날처럼
마침, 뻐꾸기가 운다


*시집/ 하모니카를 찾아서/ 천년의시작

 

 

 

 

 

 

장마 - 이강산


말복 셋을 누워서 견디는 옹고집의 어머니에게 유리창을 두드리는 저것을 어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대체 무엇인가
본다 한들 기억하려나

귀도 눈도 캄캄한 어머니보다 내가 더 캄캄해진다

무른 바나나를 따라온 하루살이 한 방울,
어머니의 눈꺼풀 위로
뚝,
떨어진다

눈이 무거웠나 보다
살그머니 눈꺼풀을 닫는다

먼먼 여름,
낡은 기와집 안방 천정에서 떨어지는 양푼의 빗방울 소리를 즐기던 얼굴,
그 고즈넉한 눈빛이다

무른 바나나 떼를 몰고 와서
눈꺼풀 유리창에 하루살이 빗방울을 쏟아부으면
귀도 눈도 환해지려나



 

# 이강산 시인은 1959년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물속의 발자국>, <모항母港>, <하모니카를 찾아서> 등이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망초 - 조성순  (0) 2020.06.28
저녁의 푸른 유리 - 이정훈  (0) 2020.06.27
쓸쓸한 말 - 김형로  (0) 2020.06.23
역설적 유전자 - 정진혁  (0) 2020.06.22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 - 김두안  (0) 2020.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