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하루의 감정 - 김정수

마루안 2020. 6. 18. 22:06

 

 

하루의 감정 - 김정수


한결같이
당신은,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한다 베란다의 아침은 뜨겁거나 푸르거나 지나치게 높아 눈 익은 풍경은
살, 풍경의 잔영

눈에서 서걱거리는 뒷모습이 빠르게 반짝거리면
남은 슬픔
선뜻, 서툴고

말없이 아침을 식별한 손과 손의
간격, 그 간극은
사과만큼 벌어지고 포장지를 벗겨 씻지 않고 먹는
아사삭, 밖에 나가도 안을 걱정하는 당신은
나무의 전생을 닮았다
길가 대신 물가에 서있던
비릿한 미루나무
물고기가 거꾸로 처박혀 파닥거리는 듯한

등의 지느러미쯤 앉아 있던 새 떼가
일제히 비늘을 털면
물 머금은 구름이
빠끔거리고

낚시라는 소일거리는 소류지에서 영혼을 말리는 일
봄을 꿰어 한가한 겨울을 낚는

저녁 6시 30분, 당신을 기다리던 불안은
은밀히
먼 곳을 응시하고

어둠은 노을과 노을빛의
틈새에서
낡고 선한 선혈을 흘리고 있다


*시집/ 홀연, 선잠/ 천년의시작

 

 

 

 

 

 

꽃의 절벽 - 김정수


아무 날도 아닌데 꽃을 선물받았다.
당신이 주는 순간
봄날이 생겨났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꽃의 절벽에
오래된 분노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모기 한 마리에도 날밤을 새운 적 많았다.
첫눈의 무릎이 아플 때까지 당신을 차고 옆에 세워두기도 했다.

다 떠나서, 애들만 생각해요. 몸이
몸을 말리는 창가에서 축축한 당신의
저녁을 보았다. 파문을 만드는 낚싯대의 미늘도
툭툭 건드려보았다.

같이 묶여 있으되 묶여 있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아무 날도 아닌데 선물 받은 스타치스가 벽에 걸려 있었다.
아무 의미 없는 날들이 쉽게 용서되지 않는
용서였다. 보푸라기 같은 날들이, 툭하면 부풀어 오르던 위태로운 삶이
귓가에 앵앵댔다.

물의 죽음이 꽃을 다 빠져나가는 동안
거꾸로 매달린 꽃이 꽃을 닫아버렸다.

 



*시인의 말

등단 30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낸다.
결국 10년 만에 한 권씩 낸 셈이다.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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