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안한 인연 - 박미경

마루안 2020. 6. 21. 19:28

 

 

불안한 인연 - 박미경


엄마다
나만 보면 웃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슬프기 그지없는 나의 엄마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 했던 여인 몇,
엄마였다

슬픈 엄마는 부지런한 남편을 만나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생은 너무나 짧았다
떠난 뒤 일 년도 채 안 돼
거처가 있던 여인 작정하고 덤볐고
아버지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나란히 안방에 누웠다
모든 잠든 밤, 집은 나 대신 울적해졌다
밥그릇 씻는 소리 요란해지자
아버지는 붙잡기 위한 술책으로
위채 기둥을 뽑아 주었다
아주 잠깐 웃음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헛마음만 열어놓았다 닫았다 했다
그 후 뿌리째 뽑혀 나간 여러 개의 기둥에는
무수한 오해들이 달려 나왔다
뭔 일 없는 것처럼 뭔 일은 늘 벌어져 있었다
와중에 오래 머물다 떠난 이 있었다
땡볕 아래에서 캄캄한 긴 시간을 보낸 건
나 혼자만 아니었을 것이다
한 생
엄마도, 나도, 그 몇도
인연이었다


*시집/ 토란꽃이 쏟아졌다/ 詩와에세이

 

 




불인한 인연, 번외 - 박미경


그 여자
뻐꾹뻐꾹 코맹맹이로 노래하며
발바닥에 털이 있는지
소리 나지 않게 다니더니
붉은오목눈이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떠난 뒤
초여름이면 찾아와 울어댔다

그 여자
위채가 기울어진 줄 모르고 온 눈치였고
안방 문을 열어보지도 않고
성급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나도
궁리가 보여 붙잡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집안의 숨소리조차
소문으로 활짝 피어 시들지 않았고
둥지 밖으로 밀려난,
해 지면 날짐승들의 놀잇감 같은 붉은오목눈이

그 후, 붉은오목눈이를 본 사람은 없다
어디로 갔을까
그 허기진 숲 살구꽃 피고 있다




# 박미경 시인은 경북 군위 출생으로 2017년 <시에>로 등단했다. 대구경북작가회의, 시에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토란꽃이 쏟아졌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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