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뭇가지의 질문법 - 박남희

마루안 2020. 5. 2. 23:12



나뭇가지의 질문법 - 박남희



세상이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찰 때

뾰족한 것으로 허공을 찔러대기보다는

조용히 이파리를 매달 것


그 이파리로 얼굴 붉히고

그 이파리가 울다가

그 이파리로 어디론가 굴러가

다보록한 흙에게 썩는 법을 배울 것


그리하여 제 이파리 모두 떨구고

허공이 온통 맑은 날

공중에 오래된 바람 소리 풀어놓고

눈물같이 여린 초승달 하나 낳아놓을 것


그러고는 안으로 안으로

의문의 강을 풀어내어

나이테의 두께를 늘려갈 것


그런 후에는

바람 밑에 숨겨두었던 뿌리에게 넌지시

물의 안부를 물어볼 것



*시집, 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 걷는사람








이제는​ - 박남희



석양을 팔아야겠습니다

기우는 것은 빨리 파는 것이 남는 것이지요

술잔을 생각하면

저녁하늘이 붉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누가 술에 조금씩 어둠을 섞어 하늘에 버렸을까요

이제는 별을 팔아야겠습니다

벌을 받아야겠습니다

술 취한 별이 모여서 막걸리처럼 흐르는 것을 사이에 두고

영영 벌 받기 위해

견우와 직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하늘을 팔아야겠습니다

죽어서 말이 없는 자와

살아서 눈물 흘리는 자가 흘려보낸 시간 속

자꾸만 기울어지던 중심을

바다 깊숙이 가라앉힌 채 인양할 줄 모르는

저 석양을 팔아야겠습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굳은살 - 한관식  (0) 2020.05.06
무연고 대기실 - 전윤호  (0) 2020.05.03
상처 - 김성장  (0) 2020.04.30
잠의 맛 - 이서화  (0) 2020.04.29
숨바꼭질 - 김말화  (0) 2020.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