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별의 주소는 묻지 않겠다 - 김남권

마루안 2019. 11. 27. 22:20

 

 

별의 주소는 묻지 않겠다 - 김남권 


늦은 그리움에,  너는 첫눈에 반한 첫눈처럼
내 가슴에 들어와 별이 되었다
우편번호도 없이 캄캄한 우표 한 장 붙인 채
수억 광년을 걸어서 왔다 

아주 오래전 보았던 눈빛 무늬를 기억해 내고는
연극이 끝난 배우처럼 나에게 왔다
하루에 한 번씩 지상의 별이 길을 떠나면 멀리서
마중 나온 너는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가 차가운 몸을 녹였다 

아직 하늘이 녹기 전,  푸른 수의를 입고
먼저 오는 이의 조문을 받기 위해
지상에 별 하나를 밝히고 그 입술 위에 천상의 화인을 찍었다 

숨이 막혔다
그렇게 혈관에 새긴 편지로 바람의 온도를 재는 동안
어둠이 걷혔다 
아직 나는 너에게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다만 새벽이 올 때까지 멀리서 오는 별 하나를 그리워할 뿐이다

 

*시집, 발신인이 없는 눈물을 받았다, 시산맥사

 

 

 

 

 

 

쑥부쟁이의 시간 - 김남권

 

 

나는 죽어 쑥부쟁이가 될 것이다

길가 어느 묵정밭이나 들판 어디 산자락에서

쉽게 눈 맞출 수 있게

무더기무더기

피어날 것이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바라보아도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며

웃고 있는 별꽃이 될 것이다

 

대문 밖에서 한 번,

방문 앞에서 한 번

헛기침 소리로 바람의 귀가를 알리던

쑥부쟁이의 밀정이 담쟁이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람이 담장 너머 9시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태초에 나를 불러왔던

바람의 뿌리가 묵어가는 동안,

비어 있던 수평선에 노을이 가득 차오른다

 

대문 밖은 8월의 함박눈 천지다

뿌리가 당기는 걸 보니

물이 가까워졌나 보다

아~ 이제 눈을 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