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너는 마치 부메랑처럼 떠나는구나 - 성윤석

마루안 2019. 11. 27. 22:05



너는 마치 부메랑처럼 떠나는구나 - 성윤석



사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기침 같은 날씨들이 생겨나고, 생겨났던 것이다
그때 팍, 그때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팍
쏟아야 했던 것이다
너무 멀리 갔는데 돌아왔다는 소문을 믿은 때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 멀면 못 돌아온단다
고무 주둥이를 입에 물고 풍선 속에서
돌아오라 돌아오라고 여행의 말들을
힘껏 불었던 것이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는데
먼저 가고 있는 것들이 생겨나고,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가고 있는 웃음이
있었던 것이다
고무 주둥이를 물고 풍선을 몇 개나 만들어야
할지 돌아오면 서로 감기를 달고
다시 기침 파티라도 하자꾸나



*시집, 2170년 12월 23일, 문학과지성








고통 - 성윤석



그에겐 목적이 없습니다 11월의 나무처럼 그도 가야 하니까
가긴 가야 하니까 잎 내고 가지 내고 잎 집니다


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갈 수 없는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요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에겐 목적이 없습니다 살아 있으니 살아갑니다
말해야 할 것과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은
다음에 얘기합시다 그땐 두 가지 말이 다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당신 없이도 1월엔 눈을 맞으며 서 있지만 11월엔
같이 서 있기도 합니다 이해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뒤돌아서 걷는 것이라지요


그는 갈 수 없습니다


별스러운 결과 없는 과정으로서


이런 일투성이로 서 있습니다


괴로워라 하지만
아아 이런 날도 다시없을 것입니다





*시인의 말


한 권이면 족하지 했는데 다시 시집을 묶는다. 계면쩍다.
이 계면쩍음이 나중에는 뻔뻔해질 것이다. 그것을 바라
보는 시간이 두렵지만 불화와 불우 그리고 불후가 진눈
깨비처럼 내리는 거리를 홀로 쏘다니며 인간의 삶을 다
시 하청받겠다. 내내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불편해서 겨
우 서 있는 듯한 문장만이 내 곁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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