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서늘한 이유 - 이시백

마루안 2019. 11. 23. 19:58



서늘한 이유 - 이시백



당신을 만나던
바닷가의 지난 인연
물고기의 부레 속에서 출렁
출렁이는 갯도랑


나는 당신이 살았던
바닷길을 따라 걷는다
당신의 목소리까지
품었던 돌담의 돌멩이


시간이 지날수록
잊었던 다정한 회포
날마다 일렁이는 초록 물살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
물고기의 가시로 박힌다


내 가슴이 서늘한 이유
여기에 있다



*시집, 아름다운 순간, 북인








할매의 시간 - 이시백



그녀가 사는 집은 모든 시계가 멈췄다. 안방의 괘종시계는 먼저 간 양반의 불알처럼 축 처져 큰 바늘은 동으로, 작은 바늘은 서쪽으로 가려한다. 큰 엄니나 작은 엄니같다. 모두 한 고집 하셨거든. 제비도 찾지 않는 처마 밑 흙벽은 종손가의 운수를 갑골문양으로 보여준다. 작은 방 탁상시계는 밥을 줘야 간다. 세월 지나니 할매의 낯빛이다. 새색시 낯빛이 언제였던가, 방마다 멈춘 시계는 한 때의 젊은 시절을 붙잡고 있다. 할매가 믿는 유일한 시간은 이렇다. '나는 더 이상 늙지 않아.'






# 이시백 시인은 전남 강진 출생으로 장돌뱅이처럼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시립대를 졸업했다. 뒤늦게 한국문화예술대학에서 시 공부를 했고 문예진흥기금 지원으로 첫 시집 <숲해설가의 아침>을 냈다. <아름다운 순간>은 두 번째 시집이다. 현재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채비 - 최동희  (0) 2019.11.26
황혼 - 김초혜  (0) 2019.11.26
사랑을 나눈 직후 - 황학주  (0) 2019.11.23
산벚나무 연서 - 김영언  (0) 2019.11.23
독 - 전형철  (0) 2019.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