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황혼 - 김초혜

마루안 2019. 11. 26. 21:27



황혼 - 김초혜



잊으시오

잊으려오


못 다한 일이 있어도

가을 산이

이리 붉은데

무슨 심사로

낱낱이

그립단 말이요






세월 - 김초혜



늙었다는 것은

흐드러진 꽃 세월이 서글프게 느껴진다는 것

돌아오지 않는 지난날을 그리워한다는 것

지난 청춘을 다 쓰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것

오늘이 가장 소중한 날이라고 말만 하는 것

늙은 줄 모르고 젊은 척한다는 것



*시집, 멀고 먼 길, 서정시학








길 - 김초혜



억새꽃 희게 된

가을 저물녘

주인은 나그네 속에 있고

나그네는 주인 속에 있다


길다 해도 지닐 수 있는 것

이 순간뿐


그대는 그대를 잊을 것이고

나그네도 나그네를 잊을 것이니






멀고 먼 길 - 김초혜



오 하느님

나이는 먹었어도

늙은 아이에 불과합니다

햇살은 발끝에 기울었는데

내 몸이나 구하자 하고

굽은 마음 어쩌지 못해

얼굴을 숨기기도 합니다

몸 안에 가득 들여놓은 꽃은

붉은 조화 나부랭이였습니다

어찌

고요를 보았다 하겠습니까






그 길도 - 김초혜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

순탄해 보이듯

내가 거쳐 온 이 길도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길일까



*시집, 멀고 먼 길, 서정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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