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드라이플라워 - 김말화

마루안 2019. 11. 18. 19:42



드라이플라워 - 김말화



구겨진 신문을 펴자 할머니가 웃고 있다


누구한테 받은 건지
까맣게 잊어버린 마른 꽃
다발을 싸서 버리려는데 문득
시반(屍斑)의 향기가 끼쳐온다 훅
독거노인의 죽음
신문 스크랩이 요약한 생을 들여다본다


폐지처럼 바스락거리는 옷자락 너머
구겨진 손엔 한줌 어둠이 고여 있다
다정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


얼마나 오래 웃어야 독(獨)이 되지 않을까


낡은 손수레엔 싸락눈이 쌓이고
수반(水盤)이 된 방은 생의 물기를 증발시켜
드라이플라워가 된 할머니


마른 몸이 마른 몸을 위로하는 시간
담벼락 아래 슬며시 내려놓고 돌아서면
저녁이 불콰하게 풍장 되고 있다



*시집, 차차차 꽃잎들, 애지








압화 - 김말화



웃음이 갇히자 울음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꽃살문을 만들다 남은 자투리 나무로
액자를 만들었다 붉은 칠을 하고


생애 처음 찾은 사진관
어색한 웃음도 인화했다
불행이 평면으로 수용된 압화


억센 손아귀가 어깨를 짓누르고
자, 사진 속에서라도 행복해야지
평생 밖으로만 떠돌던 타인 같은 바람이
가장자리로 미끄러지는 아이들을 붙잡았다


흰 앞치마를 두른 여자는
노랗고 빨간 가족을 접시 위에 올리고
창가에는 흰 구름이 지나가고


몸속을 다 갉아먹힌 마지막 순간에
엄마 품에 안겼지만
사진 속에만 있는 그를
단 한 번도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아직도 붉은 시간들이 흘러내리는






# 김말화 시인 경복 포항 출생으로 2006년 <포항문학>으로 등단했다. <차차차 꽃잎들>이 첫 시집이다. 현재 시동인 <푸른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