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은 긍정 - 전윤호
저 개도 안 물어갈 놈
아버지가 화나면 하던 말이
자꾸 귓전을 울린다
입 하나가 두렵고
손 하나가 아쉽던 가난한 가족
불여시 같은 년
아내는 그런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
내 속에서 개는 늙고
여우는 잿빛이 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밉지 않다는 것
벌써 후반전
이번 생은 점수만 까먹었지만
승부는 아직 모르고
나는 지지 않았다
*시집, 아침에 쓰는 시, 역락
심야 극장 - 전윤호
내 이마의 검버섯은
눌어붙은 냄비같아
누구의 요리를 위해 끓었던 흔적일까
요즘 자주 울어
잘 못 걸린 전화가 연인을 찾을 때
빗방울이 난간에 매달려 빛날 때
실패한 줄 알면서 아침에 깨고
아닌 줄 알면서 한밤까지 기다리지
습관으로 숨 쉬는 날들
건전지 교체하라며 삐삐거리는
현관문이 비밀번호를 거부할 때
마지막 보름달이 떠오르네
누구나 알아 떠날 때가 되면
극장의 불이 켜지고 슬픈 주제가가 흐르지
저기 내 검은 배낭을 건네주렴
# 어릴 적 어머니가 그랬지. 타고난 천성이 청개구리라 무던히도 속을 썩힐 때면 "어쩌다 저런 게 내 뱃속에서 나왔는지 몰라?" 내가 세상에 나올 때를 기억하지 못하니 그걸 증명할 사람은 어머니뿐,, 당신 멀리 떠난 후에야 땅을 쳤지만 회한을 남기고 버스는 이미 떠났다. 언제 후반전이 시작 되었지? 건전지 힘 빠지는 기미도 없이 주름진 중년이 된 개구쟁이는 이 시를 읽으며 다짐한다.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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