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예순이 왔다 - 장문석

마루안 2019. 11. 17. 18:25



예순이 왔다 - 장문석



이전엔 늘 잠이 모자랐다
학교 늦을라, 흔들어 깨우는
엄마가 미웠다 군용 모포 끌어당기는
기상나팔도 출근 재촉하는
알람도 싫었다 더 자고 싶었다
아예 깨고 싶지 않은 꽃잠도 있었다
꿈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새벽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꽃잎도 사금파리도 아스라한 별똥별인데
속절없이 깨어나 은하의 기슭
뒤척이는 날이 많아졌다 어쩌다 돋는
꿈 한 촉도 오래 정박하지 못했다
꿈의 잔해가 부스럭거렸다


굽 낮은 튜바의 음색이었다



*시집, 내 사랑 도미니카, 천년의시작








늦가을 오후 - 장문석



상가(喪家)에서 구두가 뒤바뀌었다
그것을 사흘 만에야 알았다


높은 굽에다 모양과 크기도 엇비슷했다
심지어 뒤축 바깥이 삐딱하게 닳은 것도 닮았다


누군가 나처럼 키 작고 발 작은
세상을 삐딱하게 걸어온 사람이 있었나 보다


그를 위해 술을 한 잔 더 부어 놓고
혹시나, 연락을 기다리는 늦가을 오후






# 장문석 시인은 충북 청주 출생으로 1990년 <한민족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잠든 아내 곁에서>, <아주 오래된 흔적>, <꽃 찾으러 간다>, <내 사랑 도미니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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