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금니 속에 비친 풍경 - 주영중

마루안 2019. 11. 16. 22:50



금니 속에 비친 풍경 - 주영중



누렇게 웃는 여자의 금니에서
방의 풍경이 비쳐 나온다
오십이 넘도록 여자는 방 세 평을 뱉어 놓았다
이 년 전 썩은 이처럼 빠져나간 사내


청년이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빼어 문다
무림은 늪처럼 깊기만 하다
소녀가 신경질적으로 비수를 날린다


안개 자욱한 들판
주먹으로 손바닥으로 응수하는 청년
부엌에선 솥이 끓어 넘치고
성장이 빠른 사춘기에는
벽을 쉽게 통과할 수도 있다


구릿빛 생선들,
여자의 입에서 튀어나와
칼끝에서 죽어 나간다


번득이는 비늘
그 풍경 사이로 오는 저녁의 여자
쏟아 낸 것들을 향해 길을 되짚고 있다



*시집, <생환하라, 음화>, 파란출판








견갑의수 - 주영중



공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대지 위로 떠도는 난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심장 속에 박힌 화살은
호두 속살같이 얽힌 미로의 시간은


석양의 붉은 입, 진흙 같은
어둠의 입속으로 들어가
잠드는 얼음 같은 밤들, 걷노라면
온 존재를 걸고 옷가지만 가벼이 흔들리고
몇 개의 코드만 건들면 물처럼 쏟아지리


울퉁불퉁한 단면을 들여다보면
그럴듯한 삶의 지층들도 발견될 것인데
운명의 괴물이 밀려오는 시간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깊이가 없는 빛으로 채워진 살갗
슬픈 몰골의 견갑골
빛이 모든 걸 집어삼키는 정오
풀기 없는 밥알처럼 장미 가시 위에 앉아
진화한 곤충의 눈을 하고
게걸스럽게 퀭한 눈을 하고


숨을 멈춘 간지럽고 투명한 거리
부끄러운 곳만을 드러낸 채
거리의 포즈는 오래고
불행의 정점을 전시하듯 앉아






# 이 시집에는 그냥 지나칠 뻔한 단 한 줄로 된 시인의 말이 숨어 있다. 아니 한 줄이 아니라 다섯 자다. 이렇게 짧은 시인의 말을 본 적이 있었나?



시인의 말


너무나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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