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고등어조림에 관한 명상 - 손종수

마루안 2019. 11. 15. 19:55



고등어조림에 관한 명상 - 손종수 



그리운 것들은 왜 모두 멀리 있을까


오래 지켜본 뒤에야 알았다


비린내 뒤에 감춰진 고등어의 깊은 맛을 드러내려면 시간의 절대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그리움도 그렇다


시간의 거리는 곁에 머물거나 가까이 다가오는 그만큼의 반비례로 멀어진다


검푸른 파도를 해체하고 하얗게 벌거벗은 바다의 속살에 스며드는 양념의 속도


관성의 풍미(風味)를 버릴 때 가져본 적 없는 풍정(風情)의 기다림 따라 조금씩 우러나는 맛


멀어진 뒤에야 안다. 그리운 것들은 모두 곁에 있었다



*시집, 밥이 예수다, 북인








가을 기척 - 손종수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은 페트병의 물이 마시기에 딱 좋습니다. 어떤 삶은 노상 뜨거워서 한겨울에도 찬물을 마셔야 합니다.


제 엄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버린 아이가 부엌에서 밥을 볶습니다. 5인분은 될 것 같은데 혼자 먹겠다니 식욕도 하늘만큼 높아졌습니다.


외출하려고 방문을 열었다가 얼른 닫고 스웨터를 꺼내 입었습니다. 군밤봉지 손에 든 귀갓길에는 세탁소에 들러 겨울 외투를 찾아야겠습니다.


오늘은 왠지 귀뚜라미 소리 가득 담긴 편지를 받을 것만 같습니다.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느리게 오는 편지를 읽어주고 싶습니다.






# 손종수 시인은 1958년 서울 출생으로 2014년 <시와경계> 가을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1999년 일간스포츠 바둑 관전 기자를 시작해서 2010년 월간 <바둑> 편집장, 2015년 중앙일보 객원기자를 거쳐 현재 세계사이버기원 상무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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