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염낭거미 - 김왕노

마루안 2019. 11. 16. 23:30



염낭거미 - 김왕노



허름한 방 안에서 꼬물꼬물 자식들
기어 나왔다.


그 많은 자식을 보니 그녀의 최후가 보였다.
눈앞에 없어도 보였다.


짐승 같은 인간 하나 잘못 만나
몸에 씨앗만 뿌려놓고 떠나
그것들 거둔다고 젖을 물리고 똥 기저귀 갈고


제 육신에 깃든 병은 돌보지 않고
살이고 뭐고 뽀얀 젖무덤이고
암팡진 엉덩이마저 자식에게 다 파먹어라 주고
속이 텅 비어 끝장난 여인


상주도 없이 봄날 속으로
둥둥 떠가는 염낭거미 한 마리



*시집, 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천년의시작








만추 - 김왕노


​어머니 아침에 봉선화마저 다 시들고 끝물이 온 꽃밭을 보시다가
오늘 아버지 무덤에 가서 좀 울고 오겠다고 하신다


슬픈 일을 보면 다른 슬픈 일이 떠올라 우는 것이 사람이야
곡비가 찰지게 우는 것도 죽은 사람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제 생이 슬퍼서 끝없이 곡하고 우는 것이야


나 어릴 때 돌아가신 네 아버지 부르며 비린 눈물 좀 흘리며
속이 후련하도록 울고서 집으로 돌아올게


너는 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곡도 울지도 잘 못하더니
불효막심한 놈 같더니만 네 심정 알아, 울어본 사람이 우는 거야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 너를 위해 내가 울 날이 있을지도 몰라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뭐 별 뾰족한 수가 있느냐
울 때 울고 웃을 때 웃고 눈물을 보일 때 보이는 거야
사람이 잘 산다는 것은 울고불고하며 생에 눈물 조금 보테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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