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노을 - 이태관

마루안 2018. 8. 4. 21:20

 

 

노을 - 이태관


매미가 우는 건
땅을 떠난 슬픔 때문이다
흙을 떠나 홀로 세상에 던져졌다는 것이
저리도 천둥 울음을 만들어낸다

길을 잃고
바람을 따라 끝없이 떠돌고 싶었던 건
낯선 곳에서도 말없이
나를 받아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낡은 신발에 이끌려
그들도 언젠가는 나그네,
햇살에 타 내리는 저 푸른 울음들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순간들
만나게 될 것이다

적막 같은 어둠이 몰려 왔다
그 어둠 속으로
매미 한 마리 홀로 흙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시집, 나라는 타자, 북인


 

 



나라는 타자 - 이태관


나는 고뇌하는 수도승
바람 많은 언덕에 탑을 세우고
세상이 들려주는 이야기 듣기 위해
문패는 하늘에 걸어두었지
온 몸이 십자가인 가지 위
나뭇잎 등잔 하나 매달고
또로록 개암나무 열매 굴리면 하루가 가지

바다를 향한 파란 신호등 너머
장례식장의 불빛은 밝기도 하지
썰물 때에 맞춰
하루 두 번
집을 지어야 하는 무명의 생도 있지

옛집은 아득히 멀고
그곳엔
미처 도시로 떠나지 못한 등 굽은
소나무 하나
주문처럼 서 있지

바람은 불어왔다 가지
나는 수도승
숭숭 구멍 뚫린 생도
한여름엔 시원키도 하지
젖은 옷가지 널어 말리는
줄탁의 시간
부리 하나로 하늘에 칼금을 긋는


 


# 이태관 시인은 대전 출생으로 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4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저리도 붉은 기억>, <사이에서 서성이다>, <나라는 타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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