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오래된 희망 - 정병근

마루안 2018. 7. 11. 22:45



오래된 희망 - 정병근



내 꿈은 놀고먹는 것이다


나는 게으른 숙명을 타고났다
되도록이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너의 밥을 훔쳐 먹을 생각만 골몰해왔다


내 머리 속은 놀고먹을 궁리로 가득하다
놀고먹는 生의 秘訣을 터득하기 위해
꽃피고 잎 떨어지는 세월을 갈고 닦았다
정신의 폭포수와 눈보라 같은 잠을 견뎠다


한 때 空中浮場의 기적을 꿈꾼 적이 있는 나는
족집게처럼 너의 인생을 알아맞히기 위해
고독한 토굴 속에서 온갖 벌레들과 싸웠다
놀고먹는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오늘도 나는 기약 없는 침묵의 뜰을 거닌다
밥이 있는 한, 그 희망 포기할 수 없다



*시집, 오래전에 죽은 적이 있다. 천년의시작








나의 죄 - 정병근



너를 사랑한 죄,
피를 돌리고 순환의 심장을 만든 죄


너의 자궁 속에서
진화의 은밀한 몸을 키운 죄
욕망의 손아귀를 가진 죄


너의 살을 찢고 나온 죄
너의 몸에 피의 문신을 새긴 죄


울고 웃고 보고 들은 죄
모른 척 한 죄 버린 죄


나를 사랑한 죄,


어머니를 파먹은 죄
아버지를 파묻은 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죄
백 년만 살다가 죽어야 하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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