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해변으로 독립하다 - 서윤후

마루안 2018. 7. 9. 22:06



해변으로 독립하다 - 서윤후



맨몸으로 서 있다
어린 당신의 바다들이 안녕하게 만나 해변을 이루고 발목까지 나를 담갔다
차오르기도 전에 떠도는 일은 이미 지쳐 버렸다
누군가 지어 놓고 찾아오지 않는 통나무처럼
나에겐 들리지 않는 오래된 해적방송처럼
돌아갈 곳, 하물며 떠나온 곳을 서서히 잊는 것은 해변이 나에게 들려준 말
여기저기 기념하듯 폭죽 터지고 당신을 닮은 소년들이 백사장을 뛰놀 때
같은 바다에서 다른 생각했으므로
당신은 거기서 엇갈린 것 같으므로
백사장에 모래찜질하며
씨앗처럼 누워 당신의 뿌리를 생각해 보는 것
저 멀리 여행 온 사람이 나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그것은 독립이었을까
그것은 고립이었을까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민음사








방물관(房物館) - 서윤후



방 안의 모든 압정들이 쏟아진 날, 소년은 움직일 수 없었다 오래전 잠근 문은 전망이 어렵고, 떨어진 세계지도 뒤편은 아무것도 없이 눈부셨다


모든 사물이 긴장했다 자꾸 커지는 발을 숨길 수 없었던 소년, 다치지 않으려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더니 어루만져 준 적 없는 등이 불편해졌고


믿을 것이 바닥 밖에 없었던 생일날, 누군가 방문을 열어 줄 것 같다는 예감을 통째로 박제시킨 바깥의 중력들을 관측했다


압정을 밟아 피가 흐르는 최초의 박물관을 빠녀나올 수 있을까 소년을 구경하던 모서리가 침묵을 긋고 그 틈으로 쏟아지는 미세한 고요함이 숨죽이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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