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늙어간다는 것 - 박경희

마루안 2018. 7. 9. 18:33

 

 

늙어간다는 것 - 박경희


앞니가 빠지고 등이 굽은

외정 마을에 사는 최 씨 할아버지
손등은 감나무 껍질 벗겨진 듯 꺼칠하다
고집은 쇠스랑에 걸어두어도 좋을 듯한데
쉰내 나는 오토바이 한 대
동무 삼아 산 지가 손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라다
어디 탈탈거리며 늙어가는 일이 쉬운가
앞집 권 노인 농약 하다 쓰러져
콩밭으로 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자
끌끌거리던 경운기마저 주저앉았다
자전거로 달리던 삽자루에 핀

녹 푸른 나팔꽃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무르팍 해진 자리에
헝겊을 덧대 서로를 덮어주는 일
환삼덩굴이 제 손바닥 안에 별을 들여앉히는 일
권 노인 보내고

쭈그려 앉아 대문 밖만 바라보다가
수숫대 모가지에 달라붙는

새 떼만 쫓는 하루
번호판 한쪽 찌그러진 삶처럼
그래도 탈탈거리며 가는 논둑길
쭈글쭈글 달라붙는 대추나무 길

 

*시집, 벚꽃 문신, 실천문학사

 

 

 

 

 

 

입동(立冬) - 박경희


시든 국화만 설렁설렁하는 고랑 가까이
죽어가는 개 한 마리와
할매 끌어안고 사는 할배
풍 걸린 할매 데리고 죽으러 들어갔던 저수지가 깡, 말랐다
쩍쩍, 갈라지는 게 어디 저수지뿐인가
욕창 난 할매 엉덩이 닦아줄 때마다
풀풀 날리는 똥 가루가 누렇다
벌어진 틈틈이 앉은 피딱지
껴안고 뒹굴던 날을 꼽아봐도 보이지 않는
거시기를 닦는다
그 속에서 새끼 셋 뽑았지만
지금은 서로 눈길만 피하고
땡감 씹은 얼굴로 대문 연 지 오래다
질질, 질긴 목숨 줄처럼 끊어지지 않고
떨어지는 진물 흥건하다
문지방 너머 힘겹게 눈만 감았다 뜨는 개가 멀뚱거리고
두 목숨이 저승 문턱을 두고 앞서라 뒤서라 한다
허물 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문풍지 앓는 소리
달리다가 미끄러진 다람쥐만이
마당을 쥐었다 편다

 

 

 

 

*시인의 말

오지 않은 겨울, 그 만남에 대해

산이 하얗게 주저앉았다
장끼가 물고 가다 떨어트린 함박눈이
푸드덕, 마당으로 날렸다
아부지가 놓아버린 이승의 밤이었다
푸드덕, 날아든 장끼 소리에
툭, 아부지가 산으로 갔다

겨울, 그 머지않은 시간 속으로 간다
장끼의 울음 속에서 눈이 날릴 것이다

아부지, 엄니께 늘 겨울이었던 시린 가슴이
기둥과 서까래, 지붕을 얹어 지은 집 한 채를 올린다
당신이라는 토방에 신발 올린 지 오래된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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