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 - 김재진
철 바뀐 옷 속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동전처럼
잊혀져도 모르는 사람 있다.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더러는
머리 복잡하게 쓸데없는 것까지 뭘 기억해, 하며
기억 바깥으로 쫓겨난 채
잊혀져 가는 사람 있다.
일종의 쓰레기다.
기억으로부터 분리된 채 재활용되지 않는.
자신이 분리수거 된 줄도 모르고 (사실은 알면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기다림은 기다림이 아니라
기다림에 기대어 있는 生의 의지다.
가장 필요하신 게 뭐냐고 묻자
난방비라고 대답하는
겨울, 양로원에 가 봤다.
봄날, 옷 갈아입을 때쯤이나 손끝에 닿을
동전 여려 개 그곳에 있고,
짤랑거리는 소리도 없이 쪼그리고 앉아
온다더니 오지 않는 자식 기다리는
눈곱 낀 하루가 그곳에 있다.
치마꼬리 잡고 따라나섰던 시장길
졸다가 놓쳐버린 엄마 찾아 울다가
옷 속에 넣어둔 채 잊어버린 동전처럼
다 잊고 약장수 구경하고 있으면 찾아오던
분리수거 되기 전의 그녀가 그곳에 있다.
*시집, 백조는 죽을 때 단 한번 운다, 바움
국화 앞에서 - 김재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귀밑에 아직 솜털 보송보송하거나
인생을 살았어도 헛살아버린
마음에 낀 비계 덜어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사람이라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니듯
꽃이라도 다 같은 꽃은 아니다.
눈부신 젊음 지나
한참을 더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꽃
국화는 드러나는 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는 꽃이다.
느끼는 꽃이 아니라 생각하는 꽃이다.
꺾고 싶은 꽃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꽃이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은
가을날 국화 앞에 서 보면 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굴욕을 필요로 하는가를
어쩌면 삶이란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는 것인지 모른다.
어디까지 끌고 가야할지 모를 인생을 끌고
묵묵히 견디어내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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