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랑이라는 것 - 이강산

마루안 2018. 6. 26. 20:46

 

 

사랑이라는 것 - 이강산


희망이라는 것
말복 더위로 지친 트럭 운전수 아버지의 목덜미에 어린 딸아이가 땀 흘리며 부채질 하는 것
슬픔이라는 것
남편 몰래 아이 몰래 찔끔 찍어내는 어머니의 눈물, 그 너머 이리저리 흔들리는 세상 같은 것
더디 해는 지고
한밤이 되어서도 뒤척이는 아이의 땀띠 위로 부채질하며 아내 머리맡에서 밤새우는 것
사랑이라는 것
아름다움이라는 것

 

 

*시집,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실천문학사

 

 

 

 

 

 

단풍 - 이강산

 

 

애써 들판에 나서야 가슴이 트이는

세월을 삽니다

계절의 변화가 놀랍다거나

황혼이 아름답다거나

어색한 표현을 떠올리며

얼음처럼 굳어진 감정을 두드리며 삽니다

 

내가 지우고 내가 깨뜨린

희망의 이름들이

모여서 안부를 나누고 마을을 이루는

그런 세월을 꿈꿉니다

절음발이 누이의 가을산이

절뚝절뚝 단풍 들어

마침내 눈물나는 풍경이 되니

 

늦가을 강변에 나와

나무처럼 팔 벌리고 서면

내 손끝에 내려앉은 고추잠자리

잡지 않고 조심조심 바라볼 줄 아는

세월을 삽니다

 

누이의 가을산처럼

절뚝절뚝 단풍 들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