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파파 염소의 노래 - 최준

마루안 2018. 6. 25. 22:18

 


파파 염소의 노래 - 최준


환생을 기다리며 살지
일생 언덕을 오르다 보니
내가 산 세상은 다함없는 노래였네
울음이었네 때로
노래가 되는 울음, 종종
울음이 되던 노래
생식과 양육의 즐거운 시간들이
몸의 안팎을 두루 흘렀네

나, 오늘도 언덕을 올라가네
이건 풀처럼 무해한 몸짓
환생을 위한 나만의 일탈, 아니면
모르겠네 나 자신을 향한 저항일지도

난 세상에서 부르던 노래
세상에다 함부로 던져버리지 않네
언덕 끝까지 데리고 올라가네
배우지도 않은 노래를 아주 잘 우네
아니, 배운 노래도 제대로 못 울면서
세월만큼 생도 기울어
마지막이 될지 모를 그리운 언덕
오늘도 올라가고 있네

내려오는 길이 지워져버릴지 몰라
자꾸 뒤돌아보네


*시집, 뿔라부안라뚜 해안의 고양이. 문학의전당

 

 

 



사원의 발자국 - 최준


해안 절벽 힌두사원 뒤뜰  
흰, 붉은 꽃들이 피어 있다  
발리에서 보는 타로 점은 신이 되기 위한 
여행자의 몸부림 
과거로 돌아가는 길엔 빛이 들지 않는다
가슴을 디디고 간 무수한 시간들을 
결코 기억하지 못한다
출구 없는 실내가 어지러워
여행자는 꽃잎 뒤에 숨은 자신의 손가락에 
바늘을 꽂기도 한다 화들짝 놀라 
바늘을 뽑아 낼 때
봉싯 솟아오르는 한 방울의 피
아린 게 손가락이 아니어서 여행자는 슬프다
사원의 꽃이 현실이 아닌 게 아프다
타로 점은 여행자를 뒤뜰에 가두고
그의 피를 돌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꽃잎 사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오후
흑마술처럼, 태양이 사라지고 
벼랑만 남았다
그러므로 사원은 영원한 그늘
세상의 뒷문을 조용히 빠져 나가는
여행자의 발자국은 
예외 없이 어둡다 꽃들의 영혼은
어디에도 
떨어진 흔적이 없고




# 최준 시인은 1963년 강원도 정선 출생으로 1984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개>, <나 없는 세상에 던진다>, <뿔라부안라뚜 해안의 고양이>가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밤중에 자다가 깨는 것은 - 박미란  (0) 2018.06.26
포르노 배우가 꿈인 딸 - 박남원  (0) 2018.06.26
야적된 가슴 - 강시현  (0) 2018.06.25
할미꽃 - 이태관  (0) 2018.06.25
참치 통조림의 일생 - 정덕재  (0) 2018.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