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존엄한 밥그릇 - 강시현

마루안 2018. 6. 11. 22:02

 

 

존엄한 밥그릇 - 강시현

 

 

두려움을 꺾고 남은 것을 모두 걸었을 때

다른 하늘이 열리고

처음 보는 새는 날았다

 

처참히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전부를 걸고 싸우겠다는 결단이 있었을 때

몸서리치는 외로움이

전신과 일생을 훑고 밤을 관통해 지나갔다

 

늘 관찰되고 있었지만

스스로의 위엄을 버리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각오가

핏발선 눈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자존(自尊)은 버려지지 않았고

세상의 웃음을 밀치고 지켜졌다

나를 팔지 않았음을 시대의 뼈에 새겨놓았다

 

나를 버렸을 때 진정한 내가 되었다

 

 

*시집, 태양의 외눈, 리토피아

 

 

 

 

 

 

밥그릇 2 - 강시현

 

 

머리를 감고 털다보면

흰머리가 더 많아졌다

주름살에 걸려 넘어지는 머리카락도 있다

몰래 묘자리를 보러 산에 오르는 것도 혼자가 편해졌다

 

기다림보다 가슴이 먼저 먹먹해지는 밥그릇

때론 귀한 밥상도 되었다가

어떤 때는 큰 병 날 것 같은 절절함

 

아무나 차버릴 수 있는 개밥그릇

강물이 저렇게 넘실거리며 흐르는데

흘러흘러 끝간 데 없을 곳까지 가는데

가슴엔 이토록 험한 가뭄만 쨍쨍하다

날이 갈수록 유순함으로 갇히고 길들여져

 

밥그릇 속에 갇힌 유형(流刑)의 세월

죽을 때까지 닫힌 시간을 퍼올려야 하는 고단한 펌핑

두레박은 금가고 두멍엔 구멍이 생겼는데도

개밥그릇은 바람의 길 따라 마당을 쏘다닌다

 

 

 

 

*시인의 말

 

하루하루는 간절함이 퍼올린

다다르지 못함과 나아가지 못함이다.

벽시계는 가려움을 증폭시킨다.

 

비틀거린 날들의 몸부림이 낱말마다 뒤척였기를,,,,.

순간의 삶들이 조각조각 거짓의 파편이 아니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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